“나는 완전히 틀렸다” 레이 달리오가 실패에서 배운 것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Bridgewater Associates)를 만든 레이 달리오(Ray Dalio)에게도 바닥이 있었다. 돈이 없어 아버지에게 4000달러를 빌려야 했던 때다. 투자 판단 하나를 크게 잘못한 대가였다
그런데 달리오는 훗날 이 실패가 자신을 억만장자로 만든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자신감에 ‘겸손’을 섞는 법과 분산투자의 힘을 배웠기 때문이다.
달리오는 2025년 7월 뉴욕 92NY에서 칼라일그룹 공동창업자 데이비드 루벤스타인(David Rubenstein)과 대화하며 당시를 돌아봤다. 그는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며 “그 일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내 방식을 바꿨다”고 말했다.
달리오는 1975년 브리지워터를 세웠다. 처음부터 거대한 헤지펀드였던 건 아니다. 뉴욕의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서 혼자 시작한 작은 투자자문사였다.
위기는 1980~1982년 찾아왔다. 달리오는 미국 은행들이 개발도상국에 빌려준 돈이 너무 많다고 판단했다. 결국 이 국가들이 빚을 갚지 못하고 대형 금융위기가 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1982년 멕시코가 실제로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여기까지는 달리오의 예상이 맞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달리오는 멕시코 사태가 미국과 세계경제를 깊은 침체로 끌고 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시장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통화정책을 완화했고 주식시장은 상승했다.
달리오는 훗날 “이보다 더 틀릴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잘못된 확신에 크게 베팅한 결과 돈을 잃었다. 회사 직원들도 내보내야 했다. 결국 가족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4000달러까지 빌렸다. 이 일화는 달리오가 이후 여러 인터뷰에서 반복해서 언급한 자신의 대표적인 실패담이다.
하지만 바로 그 바닥에서 두 가지 원칙이 생겼다. 달리오는 “워런 버핏조차 모든 걸 완벽하게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를 깨달았다. 대담함은 충분했지만 그만큼의 겸손이 없었다.
첫번째 교훈은 단순했다. 내가 확신한다고 해서 맞는 건 아니다. 달리오는 이 경험 이후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질문을 바꿨다. “내가 맞다”가 아니라 “내가 맞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를 묻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습관도 만들었다. 결정을 내릴 때 어떤 기준을 사용했는지 기록했다. 비슷한 상황이 다시 나타났을 때 과거의 판단 기준이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도 확인했다.
처음에는 메모였다. 나중에는 규칙이 됐다. 그리고 그 규칙을 컴퓨터 코드로 만들었다. 과거 수십년의 데이터에 적용해 실제로 잘 작동했는지 테스트했다. 이른바 ‘백테스트’다. 감으로 투자하는 대신 의사결정 기준을 명문화하고 과거 데이터로 검증하는 방식이었다.
달리오는 이런 기준을 수천개 쌓았다. 그는 이를 ‘원칙(principles)’이라고 불렀다. 브리지워터의 투자와 조직운영 시스템도 여기에서 출발했다. 훗날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된 그의 책 『원칙(Principles)』의 제목도 여기서 나왔다.
한 번 크게 틀린 뒤 그는 자신의 머리를 덜 믿게 됐다. 대신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기록하고 검증하기 시작했다.
두번째 교훈은 더 투자자답다. 분산투자다. 달리오는 서로 움직이는 방향이 다른 자산을 충분히 조합하면 기대수익률을 크게 낮추지 않고도 위험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가 자주 말하는 숫자가 있다. 15개다. “서로 상관관계가 낮은 좋은 수익원 15개를 찾아라.”
달리오는 이를 자신의 ‘투자 성배(Holy Grail of investing)’라고 부른다. 서로 상관관계가 낮은 수익원 15개 정도를 잘 조합하면 기대수익률을 희생하지 않고도 위험을 약 80% 줄일 수 있고 수익 대비 위험 비율은 약 5배 개선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달리오는 여러 공개 인터뷰에서 같은 원칙을 반복해 설명해왔다.
쉽게 말하면 계란을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바구니들이 동시에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주식 15개를 사더라도 모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진짜 분산은 아니다. 서로 다른 경제환경에서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자산을 묶어야 한다. 이 생각은 이후 브리지워터 투자전략의 뼈대가 됐다.
달리오는 자신의 실패 이후 브리지워터가 30년 넘게 연평균 약 11.8%의 수익률을 기록했다고 설명해왔다. 다만 이 수치는 특정 브리지워터 전략의 장기 성과를 달리오가 인터뷰에서 설명한 것으로, 모든 펀드와 기간의 성과를 뜻하는 건 아니다. 최근 인터뷰에서도 같은 맥락의 수치가 소개됐다.
흥미로운 건 이 모든 게 ‘더 좋은 종목을 고르는 법’에서 출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반대였다. “나는 틀릴 수 있다”는 인정에서 출발했다. 달리오에게 1982년은 단순한 투자 실패가 아니었다. 이후 삶 전체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꾼 사건이었다. 그는 실패할 때마다 그 원인을 분석하고 다음에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행동할지를 규칙으로 남겼다.
달리오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도 여기서 나왔다. “고통 + 성찰 = 진전.” 실패를 피할 수 없다면 적어도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덕분에 브리지워터 역시 한 사람의 직감에 의존하는 회사와 멀어졌다. 직원들이 서로의 판단에 공개적으로 반박하고 데이터를 이용해 의견을 검증하는 조직문화를 구축했다.
달리오의 표현을 빌리면 ‘아이디어 성과주의(idea meritocracy)’다. 직급이 높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더 나은 아이디어가 이겨야 한다는 원칙이다. 역설적으로 이 모든 시스템의 시작은 달리오 자신의 확신이 처참하게 틀렸던 순간이었다.
달리오가 이 오래된 실패담을 다시 꺼낸 데는 이유가 있다. 최근 그의 관심사는 개인이나 기업의 파산이 아니라 국가다. 신간 『국가는 어떻게 파산하는가: 빅 사이클(How Countries Go Broke: The Big Cycle)』에서 달리오는 국가부채가 어떻게 쌓이고 어느 순간 경제와 금융시스템을 압박하는지를 분석했다.
달리오는 최근 미국의 국가부채가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을 꾸준히 경고해왔다. 미국과 다른 주요국들이 이대로 가면 “경제적 심장마비와 비슷한 상황”으로 향할 수 있다는 표현도 썼다.
그는 금융시스템을 인간의 혈액순환계에 비유한다. 신용과 돈은 혈액처럼 경제 곳곳을 돈다. 기업과 가계에 자금을 공급하고 투자를 가능하게 한다. 문제는 빚이다. 경제가 충분한 소득을 만들어 이자와 원금을 갚지 못하면 부채 상환 부담이 혈관의 플라크처럼 쌓이기 시작한다. 결국 다른 곳에 써야 할 돈을 밀어낸다. 달리오가 40여년 전 자신의 투자 실패에서 겪었던 문제를 국가 규모로 확장한 셈이다.
빚을 감당할 수 있다는 확신이 틀렸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이번 책이 던지는 질문이다.달리오는 자신이 경제위기를 이야기하는 목적이 사람을 겁주는 데 있지 않다고 말한다. 구조를 이해하면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좋아하는 표현이 있다. “걱정하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걱정하지 않으면 걱정해야 한다.” 위험을 미리 걱정하는 사람이 준비하고, 준비하면 실제 위험이 닥쳤을 때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역시 1982년 경험과 맞닿아 있다. 당시 달리오는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충분히 걱정하지 않았다. 전망 하나에 지나치게 확신했고 그 확신에 돈을 걸었다.
결과는 파산 직전이었다. 그 뒤로 그는 확신보다 질문을 앞세웠다. 한 번의 전망보다 여러 개의 독립적인 수익원을 택했다. 직감보다 규칙을 만들었고 규칙은 데이터로 검증했다. 아버지에게 4000달러를 빌려야 했던 순간은 그의 인생 최악의 실패였다.
동시에 브리지워터를 만든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됐다. 달리오가 얻은 교훈은 결국 두 문장으로 줄어든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걸 잊지 말 것. 그리고 틀려도 무너지지 않도록 나눠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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